산울림 새노래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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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어느날의 일이다. 가벼운 녹크 소리와 함께 한 젊은이가 들어섰다.
젊은이가 바로 金昌完君(김창완군)⋯⋯ 그러니까 "산울림"의 리이드 싱어였던 것이다.
나는 흔히 하듯 녹음기에 카셋트를 꽂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놀랐다.
마치 AFKN의 한 뮤직 프로에서나 나올듯한 다이나믹한 사운드,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리듬 터치, 그리고 또 너무도 개성적인 멜러디의 진행과 창법⋯⋯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만 매혹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그들의 음악에 넘치는 젊은 활력, 밝은 익살끼⋯⋯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풍요한 생명력의 조각들이라고 느껴졌으며, 마치도 회색 하늘을 가르고 내보이는 한조각 푸른 하늘⋯⋯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신선한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젊은 것만큼 노련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며, 또 신선한 것만큼 완숙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젊음과 신선⋯⋯그것은 바로 창작의 원천이며, 음악에 있어서는 흘러주는 생명의 약동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 음악의 젊음과 신선한 감각, 그리고 약동하는 생명력의 리듬에 매혹되어 그들의 음악활동을 뒤밀어 주기로 작정했고, 여기서 이 음반은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청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결코 노련하지도, 완숙하지도 못하면서 던져주는 커다란 매력⋯⋯이 매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젊은이가 바로 金昌完君(김창완군)⋯⋯ 그러니까 "산울림"의 리이드 싱어였던 것이다.
나는 흔히 하듯 녹음기에 카셋트를 꽂고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는 놀랐다.
마치 AFKN의 한 뮤직 프로에서나 나올듯한 다이나믹한 사운드, 그리고 생동감 넘치는 리듬 터치, 그리고 또 너무도 개성적인 멜러디의 진행과 창법⋯⋯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그만 매혹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또 그들의 음악에 넘치는 젊은 활력, 밝은 익살끼⋯⋯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풍요한 생명력의 조각들이라고 느껴졌으며, 마치도 회색 하늘을 가르고 내보이는 한조각 푸른 하늘⋯⋯한줄기 햇살과도 같은 신선한 매력이라고 느껴졌다.
물론 젊은 것만큼 노련하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며, 또 신선한 것만큼 완숙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젊음과 신선⋯⋯그것은 바로 창작의 원천이며, 음악에 있어서는 흘러주는 생명의 약동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들 음악의 젊음과 신선한 감각, 그리고 약동하는 생명력의 리듬에 매혹되어 그들의 음악활동을 뒤밀어 주기로 작정했고, 여기서 이 음반은 시작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청중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결코 노련하지도, 완숙하지도 못하면서 던져주는 커다란 매력⋯⋯이 매력의 근원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1] 성음사. 서라벌레코드의 판매회사다.
1977년 발매된 산울림의 데뷔 앨범. 대표곡은 아니 벌써,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등.
2. 상세[편집]
1977년, 산울림의 멤버 3형제는 무이(無異, 평소와 다름없음)라는 이름의 밴드로[2] 제1회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는데, 예선에서 1위를 차지했으나 삼형제의 맏형이자 밴드의 리더 김창완이 대학을 이미 졸업한 상태라 재학생만 참가해야한다는 규정에 걸려 예선 2위였던 샌드페블즈가 나 어떡해로 대상을 수상했다. 그후 이제 사회 생활을 할 나이가 되었기에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을 마지막으로 기념하는 의미에서 서라벌 레코드에 직접 방문해 데모 테이프를 줬다고 한다. 그 당시 녹음하려면 비용이 200~300이여서 어떻게든 자비로 하려 하였으나 서라벌 레코드에서 그냥 무료로 녹음을 해준다 하여 계약서고 뭐고 그냥 바로 레코딩 날짜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창완의 은행 입사 시험 날짜와 레코딩 날짜가 겹쳤다. 김창완은 레코딩은 평생에 한번 있을 일 같아서 은행 시험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 단 한 번의 선택이 산울림을 탄생시킨 것이다.
첫 녹음 때 김창훈의 베이스는 국산 싸구려 기타였고 김창완은 필리핀 밴드가 버린 중고 기타라 평론가 이백천에게 악기를 빌려 재녹음을 했다. 1집을 잘 들어 보면 몇몇 곡에서 박자가 맞지 않거나 연주에 실수가 있다는걸 알 수 있는데 이때 당시 음반사가 녹음하는데 시간당 돈이 매우 비싸다고 겁을 줘 비용에 대한 강박감에 의해 빨리 마쳐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시간 여유를 갖고 부족한 부분을 더 연습하거나 재녹음을 해야 하는데 빨리 끝내야 된다는 강박감 때문에, 녹음은 하루 만에 끝났다고 한다.[3] 이렇게 발매된 산울림의 첫 앨범에 대중들은 괴상한 앨범이 나왔는데 음악도 괜찮다며 열광했으며 당시로선 상당히 많은 판매량인 4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였다.[4]
단순히 해외의 록 음악을 카피하는 수준이 아닌 산울림만의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작법을 사용하여 만든 앨범은 큰 호평을 받았다. 그 특유의 다듬어지지 않은 아마추어틱한 연주와 더러운 음질 때문에 한국식 개러지 록의 탄생으로 여기지기도 하며, 1975년 대마초 파동 이후 조용필, 신중현 등의 쟁쟁한 가수들이 구속되고 난 후 황폐화된 한국 록 음악 계의 기둥이 된 앨범이기도 하다. 이후 이러한 업적을 인정받아 오늘날에는 한국 최고의 록 음악 앨범 중 하나이자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깔끔한 폰트가 돋보이는 앨범 커버 왼편의 어린애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은 원래 정말로 어린애들한테 맡기려 했으나 만족할 만한 그림이 안 나오자[5] 김창완이 직접 왼손으로 그렸다고 한다. 이후 이러한 형식의 커버는 산울림의 마지막 음반인 13집 무지개까지 이어지게 된다.
3. 트랙 리스트[편집]
3.1. Side A[편집]
3.1.1. 아니 벌써[편집]
3.1.2.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편집]
- 산울림의 대표곡 중 하나. 김창완의 나레이션 같은 잔잔한 보컬이 간결한 피아노 리듬과 조화를 이루는 곡으로,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이런 곡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김창완이 산울림의 곡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곡으로도 고른 곡이다.
3.1.3. 골목길[편집]
3.1.4. 안타까운 마음[편집]
3.1.5. 그 얼굴 그 모습[편집]
3.2. Side B[편집]
3.2.1. 불꽃놀이[편집]
3.2.2. 문 좀 열어줘[편집]
- 1977년 대학가요제 때 나 어떡해를 제치고 대상 수상곡이 될 뻔 하였으나 아쉽게도 위에서 언급했듯 규정에 걸려서 탈락하였다. 또 이곡에 대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에는 아직 사전 검열이 있을 때였다. 그래서 창법 혐오라는 이상한 사유로 방송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3.2.3. 소녀[편집]
- 이곡도 아니 벌써,문 좀 열어줘와 같이 사전 검열때 개작 명령이 나왔다고 한다. 원래 제목은 “늑대”였다고 한다.
3.2.4. 청자(아리랑)[편집]
- 제목에 걸맞게 반주에 오르간으로 아리랑이 연주되는 부분이 있다.
4. 기타[편집]
가수 스베들라나 로보다의 노래 Постой, мужчина가 이 앨범의 2번 트랙인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의 리듬과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영어 제목으로 올라온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 유튜브 영상에서는 로보다가 이걸 샘플링 혹은 표절했구나! 하는 외국 반응을 간혹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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